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기에 앞서 주목한 것은 관북의 콩과 호남의 쌀이었다. 일본에는 양곡이 부족해서였을까? 넉넉지는 않았지만, 청일전쟁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다가오는 러일전쟁에 대비한 군량미의 비축이 걱정스러웠다.
일본은 먼저 함경도의 콩을 매.했다. 처음에는 수출이 달콤했으나 수출이 아니라 수탈인 것을 알게 된 주민이 소요를 일으키자 수출을 중단했다가 재개했다. 그다음으로 호남의 쌀을 주목했는데 수송이 어려웠다. 호남의 쌀 수출은 시설이 미비한 목포항만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이에 일본은 호남의 쌀을 모아 부산으로 보내고자 경부선의 부설을 서둘렀다. 이를 설계하고 추진한 인물은 이완용(李完用)이었다. 전라북도 관찰사(1895~1896)와 외부대신(1896~1898)을 거쳐 궁내부특진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그는 철도에 관심을 보이면서 경부선의 기.인 노량진역의 기공식(1901년 8월 20일)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 공사 과정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은 경부선 어디에서 호남선이 갈라지느냐의 문제였는데 이는 전북 금산(錦山)으로 설계했다.
그런데 공사가 난관에 봉착했다. 러일전쟁의 개전이 천하공지인데 금강철교를 건설하기에는 공사 기간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이었다.
모바일 바다이야기고래출현
이에 따라 경부선철도주식회사 사장 시부사와 에이이치(???一)는 호남선 분기。을 금산에서 대전으로 변경하여 1905년 1월 1일에 개통했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호남선이 금산에서 갈라졌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호남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면 수탈이 더 심화했을까? 만경평야의 황금벌판을 지나노라면 문득 시부사와가 생각난다. 나의 아픔이 남의 축복인 경우는 역사에 허다하다. 최근 그가 일본 산업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으며 화폐 1만엔 권의 초상화로 등장했다니 마음이 스산하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y036.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