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주된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시각장애인 김재영(23) 씨에게 휴대전화는 필수다. 크고 선명한 글자는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는데, 멀리 떨어진 안내판이 안 보일 때면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는다. 사진 화면을 크게 확대해 어느 방면 열차를 타야 할지, 어느 승강장으로 가야 할지를 확인하며 걸음을 옮긴다.
같은 장애를 가진 송수봉(28) 씨는 주로 손끝을 쓴다. 자택에서 인근 지하철역까지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이동하고, 지하철에서는 곳곳에 설치된 。자 안내를 따라간다. 필요에 따라 자신이 탄 열차의 승강장 번호를 .자로 확인하고 역무원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매일 같은 공간을 지나지만 두 사람이 길을 읽는 방법은 다르다. 재영 씨는 남아 있는 시력으로 휴대전화를 통해 정보를 확인하고, 수봉 씨는 시설에 새겨진 .자를 활용한다.
앞서 인천일보가 국립국어원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2025 국민의 .자 인식 및 .자 사용 환경 조사' 원자료에서 인천지역 응답자 59명을 분석한 결과, 。자를 '매우 유용하다' 또는 '유용하다'라고 평가한 응답자는 51명(86.4%)이었다. 반면 。자를 '매우 자주' 또는 '종종' 사용한다는 응답자는 5명(8.5%)이었다. .자를 유용하다고 인식하면서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는 많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은 무엇으로 읽고 있을까. 두 사람의 일상을 통해 발견한 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음성과 。자, 최근에는 인공지능(AI)까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하고 상황에 따라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같은 정보, 다른 '읽기'
시각장애인 유도 선수로 활동하는 재영 씨에게 가장 익숙한 읽기 수단은 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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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 。자를 배우긴 했지만,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긴 정보는 주로 귀로 듣고, 세부적인 사항은 확대해서 본다.
훈련 일정이 메신저로 오면 우선 화면을 키운다. 종종 협회에서 보내주는 파일도 같은 방식으로 읽는 편이다.
계속 글자를 보고 구분하려고 애쓰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도 찾았다. 현재 재영 씨에게는 밝은 바탕의 굵은 글자가 비교적 잘 보인다. 자신의 남아 있는 시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읽기 환경을 맞춰가고 있다.
수봉 씨도 음성을 많이 활용한다.
대학생인 그는 화면의 텍스트를 읽어주는 '스크린리더'를 통해 책과 학습자료 등을 접한다. 음성 속도는 최대치로 설정했다. 비시각장애인이 눈으로 글을 읽는 속도와 시각장애인이 귀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훈련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소리만으로는 닿지 않는 정보가 있다. 발음만 들어서는 정확한 철자와 맞춤법을 알기 어려운 때다. 대학 수업에서도 긴 자료는 먼저 음성으로 듣지만, 생소한 단어나 정확한 표기를 확인할 때는 。자정보단말기로 다시 읽는다.
수봉 씨는 "음성이 편하기는 하지만 음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두 개를 같이 사용하는 게 제일 좋다"며 "귀(음성)로 듣고 손(。자)으로 읽으며 기억하니까 더 오래 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음성 넘어 AI까지…넓어진 '읽기'
20대인 두 사람의 읽기 방식은 。자와 음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재영 씨는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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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을 통해 운동 루틴과 식단을 짜고 훈련 일정을 정리한다. 대회 전에는 선수들의 전적과 경기 흐름 등을 분석하기도 한다.
그에게 AI는 단순히 편리한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혼자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준다. 재영 씨는 "AI는 비서 한 명을 고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한 번에 더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자는 현재 주된 읽기 수단은 아니지만, 기존의 정보 접근 방식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이다. 재영 씨는 "지금은 .자가 주된 매체는 아니지만, 내가 사용하는 정보 접근 방식에 。자까지 얹어지면 단순한 '플러스'가 아니라 '곱하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봉 씨는 .자와 음성을 주된 수단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보조적으로 활용한다.
편의。에서 음료수를 집으면 일부 제품에는 '탄산' 정도의 。자가 적혀 있다. 다만 탄산음료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어떤 제품인지, 어떤 맛인지는 알기 어렵다. '탄산' 그 이상의 정보는 담겨 있지 않다.
때때로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제품의 정보를 물어보지만, 손님이 많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휴대전화를 먼저 꺼낸다. 카메라로 대상을 촬영하면 이미지와 문자를 인식해 설명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다. 물건의 형태와 색상, 새겨진 문구 등을 음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초록색 음료가 담긴 투명한 플라스틱 병입니다.' 식의 묘사다.
하지만 이미지 인식 기술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품에 '탄산'보다 구체적인 정보가 표시돼야 어떤 음료인지 알고 직접 고를 수 있다. 수봉 씨는 제품명 등 필요한 정보가 。자로 제공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선택으로 고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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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읽기, 공통된 말은 '자립'
이들이 정보를 읽는 방법은 확연히 달랐다. 재영 씨는 음성과 확대 화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수봉 씨는 음성을 주로 사용하면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순간마다 。자를 더했다.
두 사람의 말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기준은 누군가에게 정보를 대신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기 전에 스스로 읽고 판단할 수 있는가였다.
재영 씨는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과하게 의존하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홀로 설 수 있어야 온전한 자립이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수봉 씨 역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직접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음성을 들으며 숫자를 하나씩 찾아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지하철과 엘리베이터에서는 .자를 읽어 자신의 위치와 가야 할 곳을 확인한다. 비시각장애인이라면 금세 끝날 일을 몇 분씩 걸려 처리할 때도 있다.
그래도 직접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그는 "시간은 더 걸리지만 그래도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 자립이 제일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두성 선생이 훈맹정음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직접 읽고 쓸 수 있는 문자 체계를 마련한 지 100년. 그 사이 정보를 접하는 방법은 음성과 확대 화면, 디지털 기기, 인공지능(AI) 등으로 넓어졌다.
두 사람도 상황에 따라 여러 수단을 함께 사용했다. 。자를 사용하는 빈도와 방식은 달랐지만, 정확한 문자를 확인하거나 이동하고 무언가를 직접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는 。자의 역할도 분명했다.
서로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두 사람이 반복해서 꺼낸 말은 '자립'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기에 앞서 스스로 정보를 확인하고 판단하며 생활하기 위해서였다.
에 그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