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생사를 건 게임에 나서고, 탈락하면 잔혹한 죽음을 맞는다. 끝까지 살아남아 거액의 상금을 손에 넣기 위해 다른 참가자의 목숨까지 끊는 잔혹한 경쟁이 벌어진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신간 '존중 없는 사회'에서 '오징어 게임' 속 풍경이 극단적 경쟁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적 성과사회를 생생히 보여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승자독식 원칙이 존중받지 못하는 수많은 패배자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패배자들이 소외와 굴욕을 느끼며 소속감을 상실하고, 이는 결국 사회의 분열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한병철은 현실 세계에서 패배자들은 '오징어 게임'처럼 잔인하게 살해당하진 않지만 사실상 죽는 것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대표작 '피로사회'에서 현대사회의 성과주의를 비판했던 그는 이번 책에서 시대의 위기를 '존중'의 관.에서 들여다본다.
저자는 존중의 상실이 사회적 유대와 공동체 기반을 무너뜨려 사회 전체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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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과사회에서 존중은 '도덕적 주체'로서 인간에게 당연하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이룬 성과에 뒤따르는 결과라고 지적한다. 존중받기 위해서는 능력과 가치를 입증해야 하고, 무한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존중을 얻기 위해서 투쟁해야만 하는 곳에서 모든 사람은 출세의 사다리를 더 높이 오르고 싶어 한다. 존중을 위한 무자비한 투쟁은 모든 사람과 모든 사람 사이의 경쟁을 낳는다. 이것은 사회의 뿌리를 뒤흔든다."
현대인들이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하며 자책에 시달리는 현상 역시 존중의 실종과 관련이 깊다. 인정받지 못할까 봐 항상 불안해하면서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며 '자기 존경'을 잃고,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사라진다.
디지털 환경에서 존중의 실종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소셜미디어(SNS)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선 존중 대신 증오와 혐오 등 무례한 감정표출이 난무하고, 왜곡된 가짜뉴스가 확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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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가 타자를 향한 '관심 어린 주의'와 '사려 깊음'을 잃어버리면서 사회가 야만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오늘날 우리는 더 냉랭하게 더 배려심 없이, 더 방자하게 서로를 대한다"며 "소셜미디어에서는 최대한의 조심이 아니라 최대한의 상처 주기와 모욕이 행해진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실질적이며 깊은 유대 관계가 부재한 사회는 사실 유령과 같다"며 "우리는 서로를 유령으로 만든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구체적인 결론이나 대안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그는 성과주의 원칙에 지배되는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존중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위기를 초래하는지 파헤친다.
그는 존중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압축해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풀어냈다. 다소 난해한 내용이지만 해설과 각주를 붙여 최대한 쉬운 언어로 번역됐다.
'피로사회' 외에 '타자의 추방', '권력이란 무엇인가' 등을 펴낸 한병철은 동서양 철학을 융합해 현대사회를 조명하는 문명비평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스페인의 노벨상'으로도 불리는 아스투리아스 공주상을 받았다.
간디서원. 정창호 옮김. 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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